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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호프미팅' 한번 하니 온 재계가 '들썩'

문 대통령 '호프미팅' 한번 하니 온 재계가 '들썩'
이윤주 기자 입력 2017.07.29. 15:30
[경향신문]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위하여!”

지난 7월 27~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청와대로 기업인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면서 외친 건배사다. 문 대통령은 노타이에 호프미팅 형식까지 도입해 재계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데 주력했다. 일방적으로 의중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벗어나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이번 정부와 재계의 ‘색다른’ 만남이 관심을 끈 것은 단지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에 대한 호기심뿐 아니라 대통령과 기업 경영인의 격의 없는 대화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야말로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어지기를 기대하는 국민적 기대가 담겨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람 중심의 경제’를 외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누대에 걸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예정 시간 넘겨 2시간 10분 비공개 대화

이틀간 열린 간담회 첫날 행사에는 현대차·LG·포스코·한화·신세계·두산·CJ·오뚜기 등 대기업 대표들이 참석했다. 둘째 날에는 삼성전자·SK·롯데·KT·GS·현대중공업 그룹 등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인들 말씀을 충분히 듣고 싶어서 각본, 정해진 주제, 시간 제한, 자료가 없는 만남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첫날 간담회는 20분간 진행된 사전 호프미팅, 2시간 10분간의 비공개 대화 등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중소기업이 생산한 맥주가 테이블에 올라 임종석 비서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이 맥주를 따르고,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배달하는 이색적인 모습도 연출됐다.

정부는 정부의 정책 기조를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력했고, 재계는 앞서 일자리 창출과 협력사 지원 등의 ‘보따리’를 내놓으면서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경제보복에 따른 어려움 등 애로사항을 전달하며 목소리를 냈다.

경제정책 중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다. 새 정부의 기조에 맞춰 재계는 먼저 선물 보따리를 내놨다. LG그룹은 400억원 규모였던 LG디스플레이의 1차 협력사 전용 기술협력자금을 1000억원으로 늘려 2·3차 협력사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기아차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2·3차 협력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1500억원의 협력사 전용기금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SK그룹은 ‘동반성장펀드’를 6200억원 규모로 늘려 2·3차 협력사들도 대출받을 수 있도록 확대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각각 1차 협력사가 2차 협력사에 물품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물대지원펀드’를 5000억원, 2000억원 규모로 조성했다.

두산과 CJ그룹은 정부가 재계에 주문한 또 다른 과제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발표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계약·파견 45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2·3차 협력사 직원에게도 보수와 복리후생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CJ는 그룹 내 방송 제작, 조리원 직군 등 간접고용 중이던 3008명을 직접고용하기로 했다.

기업들은 이 같은 보따리와 함께 사업에 있어서의 어려움도 적극 토로했다. 중국 시장에서 판매가 부진한 현대차, 호텔·면세점 등을 운영하는 신세계, 전기차 배터리를 파는 LG 등의 어려움을 듣고 난 뒤 문 대통령은 “그것(사드 보복)은 뭐 하여튼 아직은 완화되는 기미가 없다”면서 “이 문제 해결에 다들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분야의 규제완화를 건의드린다”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요청을 받고서는 “규제완화는 나도 공약한 게 있다,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원 두산 회장이 “만약 신고리 5·6호기를 중단하는 것으로 결정된다면 두산중공업의 매출 타격이 불가피해질 것이 우려되지만, 해외 사업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외진출을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하자,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답했다.

비서실장·공정위장이 맥주 따르고 배달

문 대통령과 재계의 호프미팅과 내용이 주목받은 이유는 그간 대통령와 재계 대표의 만남은 주로 ‘한쪽이 말하면 한쪽이 받아쓰는’ 자리로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만 하더라도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독대가 주요 대기업이 국정농단의 돈줄 역할을 담당하는 계기로 작동했다. 청와대와 기업인이 만나 정부가 기업의 민원을 해결해주거나 특혜를 보장하고, 기업인들로부터 반대급부를 약속 받았던 것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출연, 삼성의 승마 지원 등이 모두 청와대의 요구로 이뤄진 결과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실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7월 초 내놓은 ‘탄핵 이후 한국 경제의 나아갈 길’ 보고서의 설문조사 내용을 보더라도 국민들의 경제 인식이 잘 나타났다. 연구원이 지난 5월 30일~6월 12일 총 10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는 ‘일자리 창출’이 39.0%로 1위를 차지했고, 재벌개혁이 21.1%로 2위를 차지했다. 재벌이 정경유착을 통해 부정부패에 연루됐다는 부정적 인식과 함께, 더 이상 일부 수출 대기업의 성장만으로 고용이나 소득 등 서민경제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낙수효과에 대한 실망감이 모두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청와대가 중견기업 중 유일하게 오뚜기를 간담회 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검은 거래를 끊고 공정경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제스처로 풀이된다. 오뚜기는 2008년 이후 라면값을 올리지 않았고, ‘비정규직 없는 기업’, ‘1500억원대 상속세 납부’ 등으로 ‘갓뚜기’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착한 기업으로 떠올랐다. 문 대통령은 호프미팅에서 “고용도 그렇고, 상속을 통한 경영승계도 그렇고, 사회적 공헌도 그렇고, 아마도 착한 기업 이미지가 갓뚜기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젊은 사람들이 아주 선망하는 기업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아주 잘 부합하는 모델 기업이기도 한데, 나중에 그 노하우도 말씀해주시면 좋겠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 추경을 통한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전환 등 서민 소득 증대와 일자리 창출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 같은 기조에 민간에서 기업들의 고용 확대가 동반돼야 함은 물론이다. 대통령과 재계의 격의 없는 만남이 ‘개혁’의 대상으로 재벌기업을 바라보는 국민적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앞으로도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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