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존경했던 선생님 빼앗긴 딸은 두렵고 외롭다 언론-표현-양심

존경했던 선생님 빼앗긴 딸은 두렵고 외롭다
[일제고사를 없애라④] 학부모가 본 일제고사
김융현 (redfullsun)

  

전국학업성취도 평가의 '성적 조작 의혹' 파문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전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무한경쟁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 청소년단체 활동가들이 농성돌입 기자회견 열고 일제고사 폐지와 일제고사로 인한 해직교사들의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일제고사반대
오는 10일 전국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초중학생의 교과학습 진단평가(일명 일제고사)가 미뤄졌다. 당초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는 시도교육청에서 선정한 표집학교에서만 진단평가를 실시하고 나머지 학교는 자율적으로 날짜를 정해 시험을 치르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일 각 시도교육청이 같은 문제를 가지고 다른 날 시험을 치를 수는 없다는 태도를 보여, 오는 31일 전국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질 전망이다. 일제고사 때문에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교과부는 지난해 치러진 일제고사로 인해 ▲시험 점수 조작 ▲운동부 학생 배제 ▲성적부진학교에 대한 불이익처분 등 각종 비리와 부작용들이 발생했음에도 '일제고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일제고사로 인해 불거진 이번 문제들은 마치 오래된 신문 한 꾸러미의 과거 속 이야기 같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2009년 현 시점의 이야기라는 것인데,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1970년대의 광기를 닮아있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이란 목표 아래 모든 생명과 인권의 가치가 무시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폭력과 고문을 일삼았던 바로 그 시대의 광기와 닮은꼴이다.

 

잘못된 시스템은 잘못된 결과라는 순환 고리를 만든다. 학교는 교사에게 좋은 시험결과를 채근할 것이고 교사는 다시 학생에게 채근할 것이다. 그러면 학생은 학원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이미 예견되었던 악순환의 단초가 벌써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형 출판사나 학원가에서는 일제고사 준비에 필요한 '모의고사', '특강' 등으로 전반적인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드디어 '리그'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전에 이러한 과열 현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사교육 시장이 없었던 것도 물론 아니다. 문제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와 그 연장선상에서 일제고사를 강행한다는 데 있다. 만약 전국적 규모의 평가를 해야만 도시와 지방간 학력격차를 알 수 있고, 대도시와 중소도시 간의 학력 격차를 알 수 있다면, 교과부 스스로 자신의 무능을 시인하는 셈이다.

 

아이들의 건강한 의식 헤치는 '일제고사'

 

  

전국학업성취도 평가의 '성적 조작 의혹' 파문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전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무한경쟁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 청소년단체 활동가들이 농성돌입 기자회견에서 한 학생이 가면을 쓴채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반대하며 일제고사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일제고사반대

굳이 줄을 세우지 않아도 대도시보단 중소도시가 성적이 낮을 것이고, 도시보단 농촌이 뒤에 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고, 해마다 발표되는 수없이 많은 통계 자료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이 사실을 몰라서 여태까지 그 격차를 해결하지 못했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일제고사란 이름으로 '팔꺾기'를 통해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아닌지.

 

한국 사회 엘리트는 자신의 감성과 이성의 힘으로 부족한 사람들의 삶을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경험상, 아주 개인적이긴 하지만 '엘리트'란 단어 속에는 인간다움이 생략된 경우가 많거니와 특히 '보수'라는 단어를 만나면 그런 증상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보수'라는 단어가 권위주의 정부 아래에서 아주 편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의미할 때가 많아졌다.

 

더불어 역사적으로 친일파들은 친일에서 친미로 그들의 열등감을 숨기고자 할 때 반공을 무기 삼아 너나할 것 없이 '보수'의 그늘 밑에 숨었다.

 

한국 사회의 엘리트 충원구조와 재생산구조는 이처럼 아픔을 잉태하고 있는 공간에 놓여있다.

 

엘리트 재생산 과정이 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수록 '빽과 인맥도 실력의 일부분'이고 '원정출산을 통한 미국 시민권자'가 많이 양산될수록, 검찰의 칼이 '다수의 시민'을 향할 수록, 우리는 모두 그 재생산 구조의 한계 속에 놓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소수의 엘리트보다 건강한 다수의 평범한 인재들이 올바른 시민이 되고, 국가 경쟁력이 될 것이고, 창조적 미래를 이끌어 나갈 것이며,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리게 될 것이다. 옆집아이들과 뒷집아이, 시골아이와 도시아이들이 모두 건강한 의식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의 패러다임은 인간을 그 가운데 두어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 다시 불기 시작한 1970년대의 살기와 광기를 잠재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불의와 타협하는 것을 먼저 가르치는 우리 교육

 

  

이명박 대통령 취임1년 맞은 25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청소년단체 '무한경쟁교육,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모임 세이노(Say-no)'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일제고사 부활 및 무한경쟁교육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일제고사

 

둘째 아이에게 일제고사를 다시 봐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시험을 치르겠다고 한다. 이유인즉 시험을 거부했을 때 보호자나 마찬가지인 할머니에게 닥칠 수 있는 불편함과 두려움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좀 더 논리적인 대답을 요구했고 답이 돌아왔다. 일제고사를 거부할 경우, "닥쳐올 미래가 아주 불확실하다는 것"과 "거부 의사를 보호해 줄 선생님이 없다"고 아이가 말했다. 아이는 아주 많이 두려웠는지 모른다. 존경했던 선생님을 한순간에 잃은 일부터 일제고사 당일 새벽부터 아이들을 잡으러온 남자 선생님들의 위압적인 행동까지…(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일제고사를 거부할 권리를 줬다가 해직됐다).

 

그 모든 것이 아이에겐 위협적인 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두렵기보단 반대 의사를 표현했을 때 닥칠 수 있는 공권력의 일단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선생님들에 대한 파면 조치나 촛불시위 등에 대한 강경진압은 성공한 듯 보인다. 최소한 할머니와 소녀에겐 커다란 불편함 내지는 두려움을 각인시켜서 '일제고사에 반대'하거나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을 신중하게 하도록 했으니 말이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불확실한 것이다. 중학교에 갓 입학하는 12살 난 아이는 특목고에 혹은 외고에 갈 수 없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 실력으로 보면 어림없는 이야기이고, 죽을 고생을 해도 힘들어 보이기는 한다. 그런 의미의 두려움과 불확실함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아이의 두려움은 사랑하는 선생님을 하루아침에 빼앗긴 것처럼 저항과 반대의 결과가 미래의 기회조차 빼앗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제고사의 가장 큰 폐단은 "세상을 향해 소리칠" 이들에게 불의에 타협하고 굴복하는 방법을 먼저 가르친다는 것이다.

 

'딸아, 당당히 세상과 맞서자! 그것이 삶을 힘들게 하고 때로 두렵고 외롭게 하더라도 말이다! 넌 혼자가 아니니까.'


덧글

댓글 입력 영역